사랑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요 ?
사랑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요 ?
어는 먼 옛날에 하늘에서는 커다란 기쁨과 환희가 있었어요
천사들이 함께 내려와서 기쁨의 소리를 전하여
자그마한 마을에 한 소년이 태어났다.
부모님은 어린 생명을 안고서 기뻐하던 날에
부모를 향하여 울음으로 보답했다.
그 울음이 부모에겐 희망이였다.
엄마의 젖을 빨던 시절에
가난과 함께
젖이 말라버렸으니
고통이 변하여 진한 사랑으로 덮으던 날에
사랑의 품속에서 조용히 입을 열고 걷고, 친구들과 우정이 시작되었다.
우정이 변하여 사랑도 되고
이성과의 만남이 남녀간의 사랑으로 변하였다.
두사람이 한사람으로 되어지는 사랑의 꽃이 피고
그 열매로 자식의 새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이 생기게 되었다.
마음속에 간직하며 간직한 자식 사랑이
하나가 된 사랑보다 진하게 됨이 자녀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 자식의 사랑은 육체의 사랑이 아닌
마음의 사랑이란건 알게 되었다.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이 너무 많기에
속앓이 하면서 고통을 안아야 한다.
사랑이 변하여 고통으로 변한다
이제
사랑 대신에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고통을 당한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
사랑속에서 자라고
사랑과 함께 놀고
사랑을 남에게 주면서 살고
이제는
사랑을 빼앗겨 버렸다.
이제는
세월을 계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조금씩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져 간다.
핏덩이의 보잘 것 없는 것을 보고
노래하였던 부모의 모습과
티끌이였던 우리를
자신을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것을 주는 삶으로
고통을 감내하였던 사실을...
주고 싶은 것은
다
주었으니
이제는 하나님도 인내함으로
마직막에 우리를 위해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받은 사랑을 그분에게 돌려드려야 하는데
우리는 사랑을 다 소진해 버렸으니
무엇으로 그 분께 나가야 할까.
그래도
우리에겐
꺼지지 아니한 불씨를
그 분께 드려야 한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49)
우리에겐 마지막의 소유해야 할
사랑의 불씨가 있어야
그 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나의 사랑이 고갈되어
고통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직시하면서
작은 불씨를 지피기 위해
두손 모아
꺼지지 않도록 간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다시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을 마음에 담아보자.
그래서
넘쳐나는 사랑을 또 나누며 살아보자.
그래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해 보자..
2016년 6월 11일
"처음 사랑" 담당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