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하여 (1)
십일조 (말 3:7-12) - 구약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 – 마아세르(십분의 일, 십일조) - 32회 사용
마아세르(명남)는 '십분의 일, 십일조 tithe, 십분의 일부분 tenth part'을 의미한다.
1. 정의 : '십일조'라는 말은 '십분의 일' a tenth이나 '어떤 것의 십분의 일을 받다
혹은 바치다' 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단어와 헬라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 마아세르 : 십일조) (히브리어 에세르 : 십 ten, 헬라어 데카: 십 ten)
십일조는 보통 땅의 소산으로 바쳐졌으며 하나님의 성소와 제사장들의 지원에 쓰이도록 예배자가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전체 소산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2. 기원 : 십일조가 언제 그리고 왜 종교 "세"로 채택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기에 관한 한 우리는 그 관습이 아주 오래 전에 널리 유포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마도 그 관습은 이스라엘 역사 이전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며 셈족 사람들만이 이 관습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인도 - 게르만 사람들까지도 이 관습을 쫓았던 것 같다.
십분의 일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분명히 고대 사람들의 수를 분류하는 방식이 십진법에 기초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분류법은 보통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10개 씩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의거하여 쉽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십일조는 고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수에 대한 관념에 의거하여 선택되었던 것 같다.
자주 천막의 제도와 설비에서 사용되곤 하였다(출 26장; → 장막 Tent). '10' 이라는 숫자는 또한 묵시 문학의 상징적 표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며(다니엘서, 요한계시록)
마태는 예수님의 메시야적 권능이 열 가지의 기적에 의해 입증되었다고 본다(마 8-9장).
3. 일반 세속 문헌에 나타나 있는 십일조
비록 십일조 제도가 이스라엘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발전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성경 외의 문헌들은 여러 곳에서 십일조 제도가 시행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때로 십일조 제도는 순전히 정치적인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즉 백성들이 왕에게 바친 세금이나 정복자가 피정복 국가에 부과한 조세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대 사람들이 십일조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거룩한 의미와 세속적 의미를 동시에 지칭할 때가 더욱 많았다. 느부갓네살 2세가 다스리는 동안, 바벨론에서는 왕을 포함한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신전에 십일조를 바쳤으며, 한편으로 바벨론의 왕들은 또한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거둬들였다
페르샤의 총독들도 수입의 십분의 일을 요구하였다. 더구나 페르샤의 고레스 왕은 휘하 장병들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제우스신에게 바치도록 명령하였다. 파우사니이스(AD 2C)는 헬라나 로마에서 신들에게 간혹 바쳤던 조세로서의 십일조세에 관한 많은 실례를 제공해 준다.
4.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십일조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십일조에 대한 개념은 시대가 흐르고 이스라엘 사회가 더욱 복잡화 되어감에 따라 발전된 것 같다.
매우 초기의 기록에는 아브람이→멜기세덱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14:20). 그러나 아브람이 바친 십분의 일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중에서 바친 것이지 땅의 소산 가운데서 바친 것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아브람에게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명한 법에 관한 언급도 없고 그가 그것을 준 이유에 관한 설명도 없다.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창 28:22).
창 28:22 -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게다가 야곱은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던 것 같다. 즉 야곱은 자신을 성공시키시고 다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약속으로 십일조를 드렸다.
출 23:19 -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신 26:10 -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농작물 등의 첫 번째 소산이자 가장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소산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쳤던 것 같다. 이것은 모든 것이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속한다고 생각하는 관념에 기인하는 것 같다(신 26:10). 게다가 아마도 첫 소산을 바치는 행위가 십일조 제도로 발전하였으며 바쳐야 할 첫 소산의 분량을 엄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십일조'라는 명칭이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가. 처음부터 땅의 소산
레 27:30 -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곡식, 포도주, 기름 등과 같은 소산의 십분의 일을 제물로 바쳤다. 해마다 사람들은 십분의 일을 지정된 어떤 장소로 가져가서 거기에서 아들, 딸, 노비와 마침 한 자리에 있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게 되어 있었다(신 12:6, 신 12:11, 신 12:17). 정해진 장소가 너무 먼 곳에 있다면 십일조를 돈으로 바꿔서 그곳에서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가족, → 레위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 함(신 14:22-29, 신 15:19-23).
✞ 신 14:22-29 -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오히려 본래 십일조 축제는 땅의 주인과 그의 가족들이 기쁨을 나누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성 있다.
✞ 신 15:19-23 -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의 사회는 발전하였으며, 사회적 문제도 점차 증가해 갔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십일조에 적용되는 법률이 수정되었다.
이제 땅의 소산 중에서 십분의 일은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바쳐졌다.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서 봉헌자 자신이 소비해버리는 대신에 삼년에 한번씩 십일조 예물을
각 지방의 성읍에 저장해 두었다가 그 성읍 안과 주변에 살고 있는 물질적으로 어려운 레위인들
우거하는 객들 고아와 과부들을 만나면 그들을 위해 그것을 사용했다(신 14:28, 신 26:12).
신 14:28 -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신 26:12 -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다. 점차 이스라엘의 예배가 성장해 갔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수효도 증가하였다.
이 사람들에게는 양식을 공급해 줄 땅이 배당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비와 성소의 유지비는
백성들의 헌납물로 충당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성소의 설비물이 점차 많아지고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수효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바치는 십일조만 가지고는 레위인들 및 제사장들의 생활비와 성소의 유지비를 충당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다음과 같은 십일조의 법률이 출현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십일조를 레위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다(민 18:21).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격히 말해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하나님의 집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십일조를 바쳤던 것 같다.
민 18:21 -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레위인들은 각 지방에서 거둬들인 십일조 예물을 조사하였고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의 순회 때에
레위인들을 동반하였다. 레위인들은 거둬들인 십일조 예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주었으며
(민 18:28, 느 10:32-39) 그에 대한 보답으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봉사하였다.
느 10:32 39 -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십일조 의무를 게을리 한 것은 단 한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레위인들은 밭을 경작하여 자신들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소를 떠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리하여 성소는 페허가 되고 말았다. 히스기야(왕하 31:5 이하)와 느헤미야(느 13:12)와 말라기(말 3:8, 말 3:10) 시기에 개혁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백성들은 다시 그들이 바쳐야 할 십일조를 바쳤으며 성소는 복구되었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또 다시 하나님의 율법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
5. 헬라화된 후기 유대교에서의 십일조
비록 구약성경에서처럼 십일조에 대한 관념이 납세자의 의식에만 남아있을 뿐 실제로는
십일조 예물이 거의 징수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유대교가 헬라화된 시기에도 여전히 십일조 예물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욕심 많은 대제사장들은 악당들을 탈곡 마당에 보내어 반드시 십일조를
받아와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소농들은 이 중요한 종교적인 의무 이행을 의심스럽게 생각하였다 (Josephus).
기독교 형성 직전과 초대 기독교 시기에 성직자들은 성전이 유지비와 자신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일종의 인두세를 거둬들였으며 -
매년 반 세겔씩(마 17:24, Josephus, 미쉬나 소책자, 출 30:11-16)
그들은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서조차 이 세금을 거둬들였다(이처럼 세금 징수의 대상을 팔레스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시킨 것은 랍비들이 새롭게 고안해 낸 제도였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랍비들은 십일조 과세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세상을 창조하는데 공헌한 세가지 요소들 중의 하나라고 간주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많은 사악한 것들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