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3) 예수님의 공생애
① 누가는 사 61:1에서 따온 인용문을 하나의 예정표로서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기록하였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낭독한 글 가운데에 나온다.
② 누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식사에 초대한 자에게 갚을 것이 전혀 없는 가난한 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눅 14:13).
그리고 그에게 그렇게 행한 것에 대하여 종말론적 보상을 약속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은 큰 잔치에 들어갈 제일 첫번째 대리 손님들이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 14:21).
누가복음에서는 가난이라는 이 주요한 주제가 부자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과 연관이 되어 있다(눅 6:24).
③ 나사로('하나님이 도우신다')가 하나님이 즐겨 맞으시는 가난한 자의 전형이다.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0; 눅 16:22).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한 익명의 부자는 하나님에 의해 정죄 받는 자들의 전형이다 (눅 12:13-21).
④ 눅 19:8에서 삭개오가 회개한 후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을 때,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에게 나타났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4) 바울 서신의 프토코스
바울 서신은 다음 두 가지 측면을 뚜렷이 나타낸다(4회)
① 갈 2:10과 롬 15:26은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데, 이 두 곳에서 연보의 수령자, 즉 바울이 힘써 장려하고, 다른 곳에서도 언급하는 모금의 수혜자들은 "가난한 자들" 혹은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로 불리 운다. 바울은 사도 회의에서 내린 결정과 연관하여, 그가 맡은 임무 즉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언급한다(갈 2:10).
② 갈 4:9에서 바울은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을 언급하는데, 갈라디아인들이 다시금 이것에 희생될 위험이 있었다.
③ 고후 6:3 이하의 바울의 자기 변호 끝부분에서 사도의 삶과 사역의 본질을 묘사하는 7가지 역설 중 마지막의 바로 앞에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하고"(고후 6:10)라는 언급이 나온다. 바울은 사도들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크게 부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5) 야고보서의 프토코스.
야고보서에서 프토코스는 약 2:2; 약 2:3; 약 2:5; 약 2:6에 나온다.
① 야고보는 부자들의 태도를 대중 앞에서 교회 예배에서 강하게 공격한다.
✞ 약 2: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 약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 약 2: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②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동등하게 존중할 것을 요구하신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
야고보는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베푼 긍휼은 마지막 심판에서 심판의 기준이 된다(약 2:13; 마 25:31-45)는 입장을 근거로 하여 주장한다.
(6) 요한계시록의 프토코스.
① 계 2:9에서 서머나 교회의 영적 부요함이 교회의 물질적 빈곤과 대조되어 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② 계 3:17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된 영적 부요는 가난으로 밝혀진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③ 계 13:16에서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계급,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모두가 깊은 심연에서 나온 짐승의 최면술에 어떻게 사로 잡히는 가를 묘사한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