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
처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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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1 13:53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
누가복음 18장 1-8절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
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
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오늘의 말씀
→ 오늘 주님은 기도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 재판관의 말하는 것을 들으라.
2.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위 2가지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는 마음에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날마다 찾아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주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무섭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재판관,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면 우리는 옳바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재판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정의를 외곡하는 나쁜 재판관인데
이 재판관의 판결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등에 의하여 재판이 좌우된다는 사실이겠지요.
과부가 돈이나 권력이 있었으면 간단한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과부는 끈질길 간청이 있었습니다. 죽기 살기를 무릎쓴 악전고투의 발버둥으로 이 재판관을
간청을 합니다. 오직 원한을 풀어줄 사람은 재판관이였습니다.
※ 지금 주님께서 이렇게 죽기 살기로 기도하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문제에 대하여 간청, 간구의 기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불의한 재판관이 말하는 것은 들으라고 합니다.6절
◐ 내용은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5절) - 이 괴롭게 할 과부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릴 재판관은 그 원한을 풀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 즉 주님도 날마다 주님을 괴롭게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 그런데 주님은 의로운 재판장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의로운 재판관은 이렇게 괴롭게 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든 것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 내가 오래 참으겠는냐(7절) 속히 풀어 주리라(8절) :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하시며 이루시는 약속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 하나님이 거짓말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주신 이심을 믿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 그것도 속히 응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을 보지 않겠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고 계신가요.
기도를 하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부처럼 재판관을 향하여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오직 주님을 향하는 모습 보면서 이 말씀의 의미가 마음에 와야 합니다.
믿는 다 하면서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금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3번 부인했던 베드로는 주님께 3번의 상처치유를 받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너가 죽어야 할 것까지 주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베드로가 배반한 상태에서 돌아섰다면 가룟유다와 비슷한 삶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주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왜 주님을 팔았을까요.
오늘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주님을 팔고 있는 자신이 아닌가 생각해 봅시다.
내가 주님께 하루를 주셨는데 주님께 바치고 충성했던 시간은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31)
※ 오늘 우리에겐 주님께서 간청하신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1. 불의한 재판관의 소리를 들으면서 의로우신 재판관인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의 말씀에 마음에 뜨거움이 밀려와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기 위하여 기다리는 주님께
오늘 간청의 기도, 간구의 기도를 드려 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